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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지구, 인류의 우주관 발달사

by £¶ß∃√∈⊕δ 2024. 4. 29.

지구의 모양에 대한 인식은 인류 문명의 발달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진화해 왔다. 고대 문명의 초기 단계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평평한 것으로 인식했다. 이는 당시 과학 기술의 부족으로 인해 복잡한 관측 도구나 계산법이 존재하지 않았고, 하늘을 나는 비행 수단도 없었기에 사람들은 눈으로 직접 관찰한 지평선과 땅의 모습을 토대로 세계의 모습을 상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는 지중해를 항해하며 본 땅의 모습을 근거로 지구가 방패처럼 가운데가 볼록한 원반 모양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고대 그리스에서는 지구가 구형이라는 생각을 가진 학자들도 다수 존재했다. 기원전 6세기경 피타고라스학파는 지구를 포함한 천체들이 완벽한 구형이라는 '천구설'을 제시했고, 이후 아리스토텔레스는 월식 때 지구에 의해 달에 드리워지는 그림자가 둥근 모양이라는 점, 항해 중에 수평선 너머로 먼저 선박의 돛대가 보이고 점차 선체가 드러난다는 사실 등을 근거로 지구가 구형임을 주장했다.

기원전 3세기 무렵에는 알렉산드리아의 천문학자 에라토스테네스가 하지의 정오에 태양 빛이 수직으로 내리쬐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그림자 길이 차이를 이용하여 지구 둘레의 길이를 계산해내기도 했다. 나아가 일부 고대 천문 기록에는 남반구를 항해하지 않고서는 관측할 수 없는 별자리들에 대한 언급도 남아 있어, 당시 이미 지구가 남북 방향으로도 둥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지구 구형설은 여전히 가설에 불과했다. 학자들 간의 상호 검증이나 새로운 주장을 널리 알릴만한 수단이 매우 부족했기 때문이다. 또한 고대의 과학 지식으로는 중력의 개념을 설명할 수 없었기에, 설령 지구가 구형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지표면에 붙어 살 수 있는 이유를 명쾌히 해명하지는 못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지구의 모양에 대한 논의 자체가 먼 나라 이야기에 불과했다.

중세 유럽에 이르러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대항해 시대를 전후한 항해사들과 천문학자들 사이에서는 지구 구형설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직도 일반 대중들 사이에는 지구가 평평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고, 이는 이른바 '플랫 에러(Flat Error)', 즉 '중세에는 모든 사람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다'는 현대의 잘못된 통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예컨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원정을 떠나기 전 선원들이 항해를 반대한 이유가 지구가 평평해서 끝에 떨어질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라는 일화는 사실과 다르다. 당시 선원들이 콜럼버스의 계획에 회의적이었던 것은 그가 제시한 항로와 거리 계산이 터무니없이 잘못되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콜럼버스의 계산대로라면 도저히 식량과 물을 감당할 수 없는 먼 거리였는데, 운 좋게도 그가 예상했던 곳에 신대륙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처럼 학자들과 항해사들 사이에서는 이미 지구 구형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지만, 정작 일반 서민들에게는 여전히 생소한 개념이었다. 왕이나 귀족들조차도 지구의 모양에 대해 관심을 가질 만한 교양이나 여유가 없었던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그나마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조차 드물었던 시절, 평생 만나는 유일한 지식인이라고는 시골 교회의 신부가 전부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물론 소수의 특권층이나 원양 항해사처럼 지구과학에 관심을 가질 만한 직업을 가진 이들은 예외였겠지만, 이들 역시 먹고사는 문제나 당대 사회의 통념으로 여겨지던 것 이외의 분야에 대해서는 무지할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를 실제로 돌아본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대다수의 사람들 입장에서는 '거대한 거북이의 등껍질 위에 세상이 놓여 있다'는 주장이 '지구가 둥글다'는 말만큼이나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을 것이다. 지구 구형설에 대한 결정적 증거는 1519년에서 1522년에 걸친 포르투갈의 항해사 페르난도 마젤란의 세계 일주 항해를 통해 마련되었다. 비록 마젤란 자신은 항해 중 필리핀에서 전사하고 말았지만, 그의 부하들에 의해 완성된 이 위대한 모험은 지구가 둥글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세상에 제시했다.

이처럼 지구의 모양에 대한 인식은 고대에서 중세, 근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발전해 왔다. 초기에는 눈에 보이는 세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점차 관측과 탐구를 통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깨달음이 모든 이들에게 동시에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소수의 철학자들과 항해사들에 의해 먼저 인식되기 시작했고, 마젤란의 위업을 통해 결정적으로 입증되는 과정을 거쳤지만, 정작 일반 대중에게 지구 구형설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렇게 보면 지구의 모양에 대한 우리의 인식 변화 과정은 인류 문명 발달사의 축소판이라 할 만하다. 자연에 대한 소박한 상상에서 출발하여 이성적 탐구와 경험적 증명의 단계를 거쳐 객관적 진리에 도달하는 모습은 과학 혁명 이후 근대 문명이 걸어온 길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진리의 발견과 대중적 수용 사이의 간극은 지식의 대중화가 결코 쉽지 않은 과제임을 일깨운다. 그럼에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행성의 모양을 올바로 이해하게 된 것은 분명 위대한 성취임에 틀림없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라는 깨달음의 출발점이기도 하니 말이다.